CAROL 캐롤 (2015)
애초에 나는 동성애에 관해 부정적일 수 밖에 없는 환경에서 자랐다.
어쩔 수 없이 태어나던 순간부터 다니게 된 교회에서는 동성애를 언급 해서도 안될 죄라고 가르쳐 주었고
내가 들은 동성애자 들의 최후는 항상 에이즈나 소돔과 고모라 같은 처참한 결말 이였다.
그러다가 20대가 되어 어느정도 기준을 세우고 가치 판단을 할 수 있게 된 뒤로 조금씩 생각이 바뀌어
지금은 동성애에 대한 어떠한 편견도 없다.
그저 이성애자들에 비해 현저히 적은 개체 수 때문에 우연히 마주치기라도 하면 신기 할 뿐,
다른 피부색이나 다른 혈액형, 다른 체형 정도로만 느껴진다.
이정도 밑밥을 깔고 들어가는 이유는 혹시라도 내가 이 영화를 이야기 하는 데에 있어
조금이라도 불편할 수 있을 동성애자들 또는 친인척, 기타 지인들에 대한 이해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겁나 주관적이고 좆도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른 의견에 대해 항상 열린 마음으로 들을 자신이 있다.
우선 영화 이야기를 하기 앞서 영화 첫 포스팅인 만큼 간단히 참고 할 만한 이야기를 한다면
나는 잠에 대해 굉장히 관대하다.
학창시절에는 하루 평균 12-15시간을 잤고, 지금도 잠이 오면 왠만하면 저항하지 않고 잔다.
그래서 영화관에서도 자주 잔다.
심지어 헤잇풀8 보다가 챕터3 부분에서도 잠깐 졸았다.
그리고 왓차 별점 4.5점 주었다.
그러므로 내가 포스팅을 할 때 졸았다는 이야기가 있어도 절대 영화가 지루하거나 졸린게 아닌
순전히 나의 문제이기 때문에 영화의 좋고 나쁨을 판단하는 잣대가 될 수 없을 뿐더러,
혹시라도 해당 영화 관계자 분들이 읽으신 다면 기분 나빠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영화관 시간에 딱 맞게 입장하여 초중반 5-10분정도 졸았다.
아마 캐롤과 테레즈가 각별해지는 계기가 된 사건 즈음에 졸은 것 같은데 영화를 이해하는데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영화는 매우 친절했다.
영화 설정 특성상 그녀들이 레즈비언이 된 배경과 그 감정선 들을 관객들이 꺼리낌 없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무던히 애쓴 결과라고 생각했다.
사실 케이트블란쳇 역을 남자로 바꿔 영화를 되짚어보면 정말 멜로장르에서 쓰기 힘들만큼 클리셰로 꽉꽉 채워져있다.
서로 이루어 질 수 없는 남녀가 몰래 여행을 떠나며 극도로 가까워 진다 라던가, 현실의 벽을 깨닫고 파트너중 한명이 일방적으로 떠난다던가,
수화기 너머로 서로 숨소리만 듣다가 끊어버리고 '보고싶어...'라고 말하던가, 그러다 결국 현실의 벽을 넘고 서로를 마주보며 맺는 엔딩은
정말이지 이제는 중학생들이보는 인터넷 소설에서 조차 쓰지 않는 거의 멜로라는 장르에서 금기시 되는 씬들이 아닌가?
아마 저런 구성으로 이루어진 남녀가 주인공인 영화는 김정은과 박근혜 투톱 주연으로 만들어져도 흥행하기 힘들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장면들이 지루하지 않고 절절하게 느껴진 이유는 크게 두가지로 생각된다.
1. 케미좋은 두 여주인공의 러브라인
2. 두 주인공의 러브라인이 합리화 될 수 밖에 없는 설정
위 두가지 이유 때문에 무슨 멜로영화 알고리즘 프로그램을 돌려 뽑아낸 스토리 마냥 클리셰 범벅으로 만들었어도 관객들의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있던 것 같다.
우선 케이트블란쳇과 루니마라 둘의 케미는 자막없이 봐도 느낄 수 있을 정도이니 굳이 설명하지 않겠다.
그런데 두번째 이유는 정말 영리하다.
일단 배경이 1950년대다.
잠시만 눈을감고 1950년대의 여성의 삶을 상상해 보자.
사실 그때 살아본적이 없어 아무리 눈을 감던 최면을 걸던 100% 이해 할 수는 없지만 우리는 익히 듣고 배운것이 있기 때문에 추론해 보자면
그당시 여성은 거의 남성이 누릴 수 있는 것들 중 십분의 일 정도만 누릴 수 있었다.
심지어 미국에서 여성이 참정권을 얻게 된지 채 30년 정도밖에 흐르지 않은 시대이다.
하지만 극중 캐롤은 혼인 후 아이를 키우고 있음에도 직장을 다니고 직접 운전을 하고
변호사, 의사 등 전문직 남성들에게 똑똑히 자신의 생각을 전달 할 수 있는 여성이다.
만약 캐롤이 집구석에서 식모같은 생활을 하는 여자 였다면 설사 테레즈와 사랑에 빠진다 한들 밀월 여행은 커녕 고작 집에 초대해 홍차나 홀짝이다 말았을 것이다.
이미 캐롤은 그당시 시대적인 통념을 깨는데 익숙해 있던 사람이었다.
항상 오함마를 들고 단단한 벽을 깨부수고 다니던 사람이 이제 막 신여성 유망주인 테레즈의 계란 껍질을 깨주는 것은 일도 아닐것이다.
영화를 보면 딱 중간을 기점으로 캐롤과 테레즈의 갑을관계가 바뀌는것을 느낄 수 있다.
영화 초반 항상 갑의 위치에서 테레즈를 리드하던 캐롤은 중후반 이후로는 갑자기 소극적인 태도로 변한다.
이는 의상에서도 느낄 수 있는데, 영화 초반에 강렬한 원색의 아이템을 즐겨 착용하던 캐롤과 반대로
우중충한 옷들만 입던 테레즈는 영화 후반으로 갈수록 옷이 밝아진다.
물론 나만 그렇게 느낀 것 일수도 있다.
남편과의 담판 이후로 다시 원래의 캐롤으로 돌아오게 된 것을 보면
캐롤이 바뀌게 된 계기는 아마 여성의 강한 모성애 본능으로 인해 자신의 딸을 위해 희생을 감내하겠다는 마음 이후인 것 같다.
그런데, 영화를 곱씹어보니 상당히 불쾌하다.
이유인 즉 두 레즈비언의 사랑을 합리화 하기 위해 주변 인물을 너무 병신으로 만들었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사실 사람을 겁나 치졸하고 쫄보로 만드는 방법중 하나는 남녀를 막론하고 상대방의 약점이나 지위적 불리함을 이용하여 이겨먹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거의 모든 악역이 공통적으로 갖고있는 성격이기도 한데 이 영화에서는 거의 모든 남성을 이런식으로 묘사한다.
사실 캐롤의 남편을 나쁘다고 할 수 있을까?
그당시 이혼남이 되기 일보직전의 남성이 (그것도 와이프가 레즈비언 이라서) 부릴 수 있는 투정의 허용치로 받아 줄 수는 없을까?
생각해보면 딸이 엄마랑 크리스마스 보내고 싶다해서 한밤중에 차를 돌려 다시 집에 왔는데
그 틈에 바람 피우는 대상과 여행을 가버린 것을 알게 된 남편이 이이상 얼마나 더 참아야 하는걸까?
굳이 입장바꿔 생각 해 보지 않아도 빡침의 허용치를 넘어 선다.
테레즈의 남자친구도 그렇다.
그녀와 여행가는것을 목표로 알뜰살뜰 모은 돈으로 다른 여자와 여행을 가버리는 상황이라면
오케이 고 할 사람이 남녀를 막론하고 있을까 싶다.
왜 굳이 주변인들을 나쁜사람으로 만들면서 까지 교묘히 비난을 벗어나려 했을까?
이쯤되면 이건 레즈비언을 비난 하는것이 아닌 한 가정을 파탄낸 두 여성의 사랑이 사람들로부터 축복받아 마땅한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캐롤의 행복을 위해 그 책임을 남편이나 딸이 넘겨받게 된다면 그게 정말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용서가 될 문제인지
아니면 그저 레즈비언이라는 신선한 사랑 이야기에 현혹된 것은 아닌지.